학회소식         회원동정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복원 '지시'가 부적절한 이유

 문 대통령은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수보회의)를 주재하고 모두발언을 통해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지방정책에 꼭 포함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대사가 삼국사 중심으로 연구되다보니 삼국사 이전의 고대사가 연구가 안 된 측면이 있고 가야사는 신라사에 겹쳐 제대로 연구가 안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야사를 경남 중심으로 경북까지만 미친 역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더 넓고, 섬진강 주변 광양만과 순천만, 심지어 남원 일대까지 맞물리고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들이 남아있다''그렇게 넓었던 역사이기 때문에 가야사 연구 복원은 영호남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인데 국정기획위가 놓치면 다시 과제로 삼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충분히 반영되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 201761?머니투데이?

이 소식에 역사학과 고고학계 일부는 환영하고, 일부는 갸우뚱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통령의 언급은 구체적이다. 학계도 대가야 유물들이 넓게 발견된다는 점을 일찍부터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최근 20년간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매우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본다. 수석회의에서 대통령이 이렇게 언급하면 그것은 '지시'가 된다.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대통령의 이런 언급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 연구나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 설사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의 논의를 거쳐 중장기적 지원책이 마련되도록 하면 될 일이다. 역사 연구자들이 대통령의 지시로 그동안 안하던 연구에 새삼 몰두하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야사 연구가 다른 분야에 비해 부진한 것은 배경과 이유가 있다. 이것들이 대통령의 지시로 단기간에 나아질 수는 없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으면 관료들은 예산을 배정할 것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추진실적을 청와대에 보고해야 한다.

연구비가 책정되면 거기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지자체들은 전시관이다 박물관이다... 건설업계와 결합하여 공사를 벌일 것이며. 영호남 교류다 뭐다 해서 여러 지자체들이 동서교류축제, 가야 축제를 벌이면서 예산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계좌에 실제 입금되지 않고 영원히 입금안되는 '경제유발효과'를 들먹일 것이다.

각종 발굴이 짧은 기간에 추진될 것이며, 복원이란 명목으로 여러 사업들이 추진될 것이다. 이런 양상은 불을 보듯 예상된다. 예전에도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관련 지자체들이 고고학, 고대사 연구자들에게 연락해온다는 소문도 들린다.

문화 관광 등은 또 다른 차원이겠지만, 역사의 특정 시기 연구를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역사를 잘못 가르친다고 국정교과서를 지시하고, 혼이 비정상이라는 등. '상고사 정립' 방침을 지시했던 박근혜 정권의 악몽을 벗어난지 아직 몇달 지나지도 않았다.

 

둘째, 가야사를 연구, 복원하는 것이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는 이야기는 '역사를 도구화'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언급은 지자체들이 예산 받으려고 내세우는 기획 슬로건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문제이다.

실제로 이런 사업을 벌여서 영호남의 벽이 허물어진다고 믿는 사람이 학계에 있을까? 내 주변에는 없다. 고고학이나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 누가 이런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이겠는가? 여지껏 그런 것이 없어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생겨나고 이어지고 있는가?!

농담이지만, 영호남 '지자체 장들의 친목'이 돈독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받아 이리저리 다니며 행사 벌이고 기공식하고...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야 고분에서 발견되는 보배고둥, 이모가이 조개를 찾아서 시군 의원들과 함께 북큐슈나 오키나와를 찾는 행사를 할 지도 모르겠다. 농담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대통령의 '지시' 이야기가 나왔으니,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도종환 의원을 문화부 장관으로 지명한 뒤 SNS에서 논란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SNS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식을 듣는다. 도의원이 지난 19대 국회에서 사이비역사 주창자들과 결합하여 어떤 일을 벌였는가 길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그가 고대사학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점도 학계 대부분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동안 잠잠한 듯하더니, 선거 끝나고나니 바로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는 지난 주에 국회에서 그런 모임에 참석하여 축사하는 가운데 역사학계를 '식민사학 카르텔'에 찌든 존재로 언급했다.

SNS에서 논란이 일자 주진오 교수가 도 의원을 옹호했다고 한다. 그 중에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구절이 있었다. '저는 한국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도종환 의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구절에 놀란다.

주교수 개인은 그리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주교수 개인이 역사학계 그 자체는 아니다.

국정교과서  폐지는, 주권자들이 투표해서 정권을 바꿈으로써 대통령의 지시를 통해 이루어졌다. 법적, 제도적으로 그렇게 마무리된 것이고, 주권자인 국민 다수가 반대한 결과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육자들이 길거리에 나가면서까지 저항하였다. 야당 의원들도 열심히 노력했다는 사실은 안다. 주권자가 선출한 국회의원이라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갖고 우리 학계가 도종환 의원에게 빚을 졌다?

왕조시대의 발상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언급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도종환 의원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치 않는다. 내가 배은망덕한 사람이라서일까? 한국이 해방된 것이 연합국 덕분이고, 미국에 큰 빚을 졌으니 왠만한 것들은 그냥 넘어가자는 발상을 떠올리게 된다.

고대사학계는 도종환 장관 후보자에 대해 매우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

2013년 4월 26일, 박근혜의 청와대가 '상고사 정립' 방침을 결정하자, 정부 각 기관에서 예산이 배정되고 엉뚱한 곳에 지원되기 시작했다. 주로 사이비역사 쪽이 거액을 수혜한 것으로 안다. 교육부 공무원들 중 사이비역사에 경도된 그룹이 일사불란하게 자기 멤버를 한중연, 동북아재단에 배치하여 이런 일을 진행했다.(구체적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 뒤 국정교과서 방침을 발표할 때도 '상고사 강화'라는 표현들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청와대의 행정 권력은 이렇게 막강한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 내의 사이비역사 주창자들 일부는 영전을 거듭했다. 중하급 관료들의 행정 수완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묘하게도 이 기간에 국회의 '동북아특위'가 사이비역사 주창자들을 국회로 불러들여 목소리를 높일 기회를 주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해를 거듭하여 이어졌다. 그리고 여야 의원이 함께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에 찌든 카르텔'로 낙인찍었다. 그런 활동의 중심에 도종환 의원이 있었다.

청와대와 교육부 공무원 그룹, 도종환 의원을 필두로 한 의회 권력은 사이비역사 주창자들과 한통속이었다. 관련자들끼리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 서로 연락을 취하면서 활동했는지, 아니면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활동을 때맞춰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약간의 뉘앙스 차이를 지니면서도 이들은  결과적으로 하나였다. 그가 고대사학계를 식민사학에 찌든 카르텔이라고 했으므로, 도종환 의원을 포함한 저들을 '사이비역사 커넥션'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나는 도 의원과 친분이 없다. 2015년 가을, 국정교과서 반대를 위해 역사 연구자들이 길거리에 나왔을 때,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얼굴을 잠시 본 것이 전부이다. 그는 문화 방면의 다른 부문에서 평이 좋은 사람으로 안다. 국정교과서 반대에 열심히 뛰어들어 활동한 것도 안다.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가 참 다면적이고 복합적이며 모순으로 차 있음을 느끼게 된다.

고대사학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그가 장관이 된 다음의 일이다. 블랙리스트는 사라졌다지만,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서 그가 선호하는 사이비역사 주창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벌일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는 기우가 아니다.

2015년 겨울, 민주당에서 종로에 천막을 치고 여러 인사들을 불러 국정교과서 반대를 역설하는 강연회를 열 때. 도 의원이 추천한 것으로 짐작되는 사이비역사 주창자가 나온 적이 있었다. 참석한 이의 전언에 따르면, 국정교과서 반대는 잠시 원론적으로 언급되고,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을 기존 고대사학계 비판에 할애했다고 한다. 도 의원이 바로 이 사람을 사부(師父)처럼 받든다는 소문도 일찍이 들었다.

  

학계가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이에 사이비역사는 대중의 저변에 깊이 파고들어 혹세무민하는 정도가 심해졌다. 인터넷 신문과 각종 단체들... 나는 이들의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일부 파악한 바로는 서울시의 지원금, 그리고 박승춘 처장 시절에 보훈처로부터도 지원금을 받고 있었다. 어쩌면 정보기관의 후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고대사학계와 고고학계의 일부 학회들이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작년 초의 일이다. 학술대회도 했고,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또 2016년에는 총 24회의 시민강좌도 진행하였다. 지금은 지방에서 작은 규모로 진행하는 중이다.

 

도종환 의원이 사이비역사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는 모르겠다. 혹자는 소위 '환빠' 수준은 아니라 하고, 혹자는 학계를 식민사학 카르텔이라고 적대시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도 한다.

또 그의 이런 성향이 장관으로서 중대한 결격사유냐 아니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판단을 일단 보류해둔다. 다만, 사이비역사에 빠져드는 것은 마치 사이비종교에 매몰되는 것과 비슷하여 합리적 토론이 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개인적 경험도 있다. 도 의원이 장관이 되면, 공직자로서 객관성을 지키며 사이비역사 화이트리스트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더구나 그는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계를 적대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 하나만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그가 고대사학계를 식민사학에 젖은 카르텔이라고 간주하며, 사이비역사를 통해 '역사를 바로세우고 민족정신을 드높이자'고 한다면. 그리고 공적 권력을 이용해서 그런 일들을 한다면, 박근혜 정권이 역사학계 70%가 좌편향되었다고 매도하며 '혼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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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의 어떤 게시판에 올릴지가 썩 적당치 않아서 여기에 올립니다.

최근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복원 언급을 둘러싸고 회원, 임원 사이에 약간의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아직 학회 차원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했고. 일부 임원들과 의견을 나눈 뒤에 개인의 생각을 적어서 회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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