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뿌리'가 뽑힌 교과서!
선사시대 삭제와 고대사 축소는 학생 학습권 박탈이자 국가 교육 실패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선사시대 삭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대사 축소를 규탄한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중·고등학교 검인정 역사 교과서(중학교 7종, 고등학교 8종)는 2024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한 교과용 도서 검정 평가를 통과하여 2025년부터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중학교 <역사 1>과 <역사 2>, 고등학교 <한국사 1> 교과서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에서 한 발 더 후퇴하여 아예 한국사의 기원을 구성하는 선사시대를 삭제하거나 형해화시켜 세계사로 밀어냄으로써, 한국사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붕괴시켰다. 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고대사 비중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학생들의 역사인식 수준에 맞는 체계적인 역사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중학교는 전근대사, 고등학교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교과서 서술 내용을 계열화한다는 명분 아래 도입한 이러한 결정은 단순한 분량 축소나 기술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 인식의 구조 자체를 뒤틀어버린 중대한 교육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연속된 시간 속에서 인간과 공동체가 어떻게 인류사적 경험을 축적해 왔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 출발점을 삭제하고 균형을 잃어버린 교과서는 뿌리를 잃은 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힘을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현행 교과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대한 결함이며, 단순한 자구 수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사 교육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 설정된 것으로, 한국 고고학계와 고대사학계는 이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1. 한국사의 장기적 연속성을 파괴한 교과서
중학교 역사2(한국사)에서는 선사시대가 삭제되어 한국사가 고조선에서 돌연 시작되는 것처럼 왜곡되며, 그 이전 한반도와 만주에서 전개된 수십만 년의 인류사적 변화와 환경 적응, 생업과 사회 변화의 과정이 모두 공백으로 남는다. 이러한 구조는 학생들에게 한국사의 시간적 깊이, 연속성, 변화의 논리를 학습할 기회를 제거하는 것이며, 역사교육이 지향해야 할 “과정의 이해”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역사적 변화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없으며, 한국사의 성립이 ‘갑작스러운 출현’처럼 왜곡되는 구조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
2. 세계사와 한국사 간의 균형적 서술이 상실된 교과서
중학교 <역사 1>(세계사)에서는 인류의 기원, 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의 변화, 농경과 문명화 과정 등 세계사적 흐름을 개략적이나마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역사 2>(한국사)에서는 선사시대 내용이 삭제되어, 학생들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중학교 <역사 1>에 형식적으로 편입된 내용을 전제로 고등학교 <한국사 1>에서도 사실상 선사시대를 삭제함으로써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전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선사시대를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었다.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에는 선사시대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하고, 동아시아 비교 교육에서 한국사의 독자성과 정합성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3. 학생의 역사인식 수준을 무시한 교과서
중학교는 전근대사, 고등학교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역사교육을 계열화한다면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대사 비중을 대폭 축소시켰다. 이에 따라 고대사 이해에 필요한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조차 서술하지 않은 기형적인 교과서가 탄생했다(예시: 신라 법흥왕이 시행한 병부 설치, 율령반포, 불교 공인, 상대등 설치를 모두 기술한 고등학교 교과서가 거의 없음). 이러한 기형적인 교과서로는 정상적인 역사교육을 할 수 없다. 학교급별 계열성은 전근대사와 근현대사의 서술 분량 조절이 아니라 학생의 역사인식 수준을 반영해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학생의 역사인식 수준에 맞게 선사~현대에 걸친 한국사의 전개과정을 균형 있게 체계적으로 서술함으로써 한국사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4. 한국고고학 및 고대사 연구 성과의 축적을 무시한 퇴행적 교과서
지난 수십 년간의 한국 고고학 및 고대사 연구는 선사와 역사시대 한국사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정밀하게 복원해왔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성과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수십 년 전 서술 방식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한국 고고학 및 고대사학계가 축적해 온 지식은 교육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배제되었고, 이는 국가 지식 체계가 스스로 후퇴한 것과 다르지 않다. 현행 교과서의 퇴행적 서술은 교과서 제작 및 검정 과정에 고고학·고대사 전문 연구자의 참여를 사실상 배제한 데 기인한다. 그 결과 학생들은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왜곡된 지식만 배울 뿐이다.
5. 학생 학습권 침해와 교육 현장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교과서
성취기준에서 선사시대가 삭제되면서 교사는 가르칠 근거를 잃고, 학생은 배울 권리를 잃는다. 중·고등학교 전체에서 선사시대 교육이 사실상 사라져 한국사의 출발점을 알지 못한 채 성장하는 세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학교급별 위계성과 계열성을 전근대사와 근현대사의 서술 비중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확보하려 함으로써 학생들이 역사인식 수준에 맞는 한국사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한국사를 세계사에서 서술하는 현 구조는 한국사 학습 체계 전체의 일관성을 무너뜨리고,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한다.
이에 우리는 한국사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근본적 조치를 촉구하며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초래한 역사 교과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보완 조치를 즉시 마 련하고 시행하라.
둘째, 중학교 역사 2 교과서의 선사시대 서술 복원을 위한 국가적 로드맵을 즉시 제시하라.
셋째, 학교급별 위계성과 계열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고대사 서술 비중을 정상화하라.
넷째, 선사 및 고대사 서술을 최신 학술 성과에 기반하여 전면 재구성하라.
다섯째, 교과서 집필 및 검정 과정에 전문 연구자를 반드시 참여시킬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 련하라.
2025년 12월 11일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상고사학회, 한국구석기학회, 한국신석기학회, 한국청동기학회, 중세고고학회, 영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회, 호서고고학회, 중부고고학회, 부산고고학회, 한국대중고고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