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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문에 보이는 倭의 실체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687
광개토대왕비문에 보이는 倭의 실체




광개토대왕비문에 보이는 倭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倭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록을 살펴보아야하며, 그 기록은 바로 일본서기이다.

광개토대왕비문이 세상에 알려지고 난 후로 비문의 신묘년 관련기록은 많은 연구자들 사이에 일본서기의 神功皇后攝政紀의 기록과 관련하여 연구를 하여왔다.



오늘은 이 신공기를 조금 살펴보자.



먼저 일본서기 신공기를 펼쳐 죽 읽어 가다 보면, 魏志를 인용한 39년 40년 43년의 기록을 만나게 된다. 인명표기와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위지 왜인전의 기록과 동일하다. 그런데 일본서기의 신공기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분주들과는 달리 위 3개의 분주는 본문의 내용을 가지지 않고 있다. 단지 39년조 만이 卅九年 是年也大歲己未(39년 이해는 大歲 己未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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卅九年。是年也 大歲己未。魏志云。明帝景初三年六月。倭女王遣大夫難斗米等。詣郡求詣天子朝獻。太守■夏遣使將送詣京都也。
tttt年。魏志云。正始元年。遣建忠校尉梯携等奉詔書印綬。詣倭國也。
tttt三年。魏志云。正始四年倭王復遣使大夫伊聲者掖耶約等八人上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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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는 39년 40년 43년조의 기록을 이용하여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신공을 위지 왜인전의 卑彌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신공39년은 정확히 서기 239년임을 밝히고 있다.

신공 39년 = 明帝景初三年 = 서기 239년
신공 40년 = 魏 正始元年 = 서기 240년
신공 43년 = 魏 正始四年 = 서기 243년




그런데 신공기의 전반부 기록과 후반부의 기록은 조금 비교가 된다.

신공기의 기록을 조금 더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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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十五年。百濟肖古王薨。
五十六年。百濟王子貴須立爲王。
.....
六十四年。百濟國貴須王薨。王子枕流王立爲王。
六十五年。百濟枕流王薨。王子阿花年少。叔父辰斯奪立爲王。
六十六年。是年晋武帝泰初二年。晉起居注云。武帝泰初二年十月。倭女王遣重貢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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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39년과 비슷한 기록방식의 66년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六十六年 是年晋武帝泰初二年(66년 이해는 晋武帝 泰初2년이다.)이라는 언급을 한 후에 晉起居注를 인용한 기록을 남겨 두었다. 그런데 晋武帝는 泰初라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晋武帝가 사용한 연호는 泰初가 아니라 泰始이다. 그래서 初를 始의 잘못으로 파악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방법은 변경해석이며, 사료를 왜곡하는 태도이다.



필자는 ‘泰初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일본서기 작성자들의 의도적인 기록’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점은 이어지는 문장으로 보아 명백하다. 현존하는 晉起居注에는 일본서기에 인용된 “武帝泰初二年十月。倭女王遣重貢獻。”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晉起居注의 기록 또한 ‘일본서기 작성자들의 의도적인 기록’으로 파악된다.



신공66년에 대응하는 기록을 晉書에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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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書卷三 帝紀第三 武帝 泰始二年 十一月己卯,倭人來獻方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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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기록은 “冬十月丙午朔,日有蝕之。.. 생략”라고 되어 있다.



참고로 아래는 冊府元龜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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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府元龜 卷九百六十八 外臣部 朝貢第一

晉武帝泰始元年倭人國女王遣使重譯朝獻扶南國亦遣使朝貢。
二年十一月倭人來獻方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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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신공 66년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바로 ‘泰初’라는 연호에 있다.

중국의 왕조 중에 泰初라는 연호를 사용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전진의 高帝가 사용한 것이다. 전진 高帝 泰初2년은 서기 387년이며, 丁亥년이다. 필자는 앞에서 일본서기의 기록자들은 위지 왜인전에 기록된 卑彌呼를 이용하여 신공기의 기년을 작성한 것임을 보였다. 그런데, 위지 왜인전은 정시 8년(247년)을 마지막으로 卑彌呼의 기록은 끝이 난다. 그래서 일본서기 신공기는 47년으로 끝을 맺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서기의 신공기는 69년까지로 되어 있다. 이 것이 바로 일본서기의 작성자들이 晉書에 기록된 倭人國女王의 기록을 무시할 수 없어 卑彌呼의 기년을 늘인 것이다. 이처럼 진서에 기록된 倭女王은 卑彌呼의 宗女인 壹與이며, 그의 기년이 일본서기 신공기에 추가되어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정사 기록은 卑彌呼의 宗女인 壹與를 마지막으로 倭는 역사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일본열도는 無王統의 공백기로 접어든다. 일본서기는 이 無王統의 공백기를 일본서기에서 숨긴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泰初’라는 연호이다.



좀 더 살펴보자.
신공64년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六十四年。百濟國貴須王薨。王子枕流王立爲王。
貴須王의 아들은 枕流王이 아니다. 64년조의 기록은 ‘貴須王에서 枕流王으로 이어지는 동안’(표현이 좀 이상하지만)에 일본서기에 기록할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넣은 기록이다. 사실 일본서기 신공기에서 55년 56년, 그리고 64년 65년 기록은 신공기의 기록과는 무관한 백제왕력이다. 더러 연구자들 중 貴須 앞에 近자를 추가하여. 近仇首王[근구수왕]으로 이해하는 사고도 있지만, 이 것 또한 변경해석이며 사료에 대한 왜곡이다.



신공 64년은 일본서기 자체의 기년으로 서기 264년이다. 그런데 百濟國貴須王薨은 서기234년의 사건이며, 王子枕流王立爲王은 서기384년의 사건이다. 이렇게 3개의 기록은 기년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miri 주 : 이 기록을 통하여 일본서기 신공기는 신공64년을 기준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차차 설명하기로 한다.)


앞의 기록 또한 마찬가지이다.
五十五年(서기 255년) 百濟肖古王薨(서기 214년)
五十六年(서기 256년) 百濟王子貴須立爲王(서기 214년)



이번에 신공 65년의 기록을 보자
六十五年。百濟枕流王薨。王子阿花年少。叔父辰斯奪立爲王。

신공65年은 서기 265년이며, ‘百濟枕流王薨 王子阿花年少 叔父辰斯奪立爲王’은 서기 385년의 사건이다. 정확히 120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사건이다. 서기 265년과 서기 385년은 太歲干支가 일치한다. 일본서기가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신공 65년조를 위하여 일본서기 작성자들은 55년, 56년, 64년의 기록을 추가하여 기년에 맞지 않는 백제왕력을 삽입한 것이다. 신공 65년은 서기 385년인 것이다.


일본서기의 기록자들은 3세기에 활동한 비미호를 4세기 후반의 인물인 應神에 연결시키기 위하여 그 들을 母子관계로 기록해 두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母子관계가 아니다. 이 것이 일본서기가 숨겨온 기년의 비밀이다.




이제 이 엉터리 기록 3개(55년, 56년, 64년)를 일본서기에서 삭제하자. 그러면 일본서기 신공기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5년의 기록을 이어서 계속 66년의 기록을 살펴보자.
六十六年。是年晋武帝泰初二年。晉起居注云。武帝泰初二年十月。倭女王遣重貢獻。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제 일본서기의 기록자들의 고민이 보일 것이다. 일본서기의 기록자들은 진서에 기록된 壹與의 기록을 일본서기의 비미호의 기년과 충돌하지 않도록 일본서기에 기록을 하려고 하였을 것이며 그 절충점이 바로 ‘泰初’라는 연호인 것이다. 신공 65년이 385년이라면 신공 66년은 386년이 되고, 그렇다면 진서에 기록되어 있는 壹與의 기록을 삽입할 공간이 사라진다. 그러나 晋武帝泰始를 泰初로 바꿈으로써 일본서기의 기록자들은 快哉를 불렀을 것이다. 그 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서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泰初를 泰始의 잘못으로 유도한 것이다. 기막힌 꼼수다.



이것이 지금까지 여러 연구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일본서기 신공기에 숨어 있었던 기년의 비밀이다.



일본서기 신공기의 앞의 기록은 3세기대의 일본열도에 실질적으로 존재했던 여왕인 卑彌呼의 기년으로 연대기를 작성되어 있다. 그러나 진서에 기록된 壹與의 실질적인 사실을 무시할 수 없어 卑彌呼의 기년을 늘였지만 그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장치로써 ‘泰初2년’이라는 기록을 남겨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卑彌呼의 기년을 늘여 應神에 연결시킨 것이다.


결국 일본서기의 기년 조작은 일본열도의 일부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卑彌呼와 壹與 이 후 약120년 가량 일본열도에는 無王統의 공백기이었음을 숨기기 위한 조치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이는 ‘倭’라는 실체는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이는 倭의 실체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필자의 예전 글에서 이미 작성해 두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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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오늘 아내를 위하여 간단히 청소도 하고, 또 저녁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아내가 무척 기뻐하더군요. 아내의 얼굴에서 ‘행복’ 비스무리한 단어가 보이더군요. 여러분은 무엇이 행복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출처 : http://www.history21.org/zb41/view.php?id=discuss2008&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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